나는 무엇을 바라고 건축을 선택했을까.
학부 3년 남짓을 보내며 거쳐온 경험과 시간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과정들이었다. 고등학교를 3개월 남짓 다니고 자퇴한 이후, 17살부터 3년간의 방황기를 거치며 한 가지는 배운 점이 있었다. 나는 정해진 길보다 스스로 납득 가능한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것. 확신이 없는 상태로 머무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그로써, 당연한 말일지 모르지만, 남들의 말을 빌린 결론보다 오래 붙잡아 오롯이 고민한 선택을 더 신뢰했다. 때로는 외골수처럼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일이 일종의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3년의 시간을 나는 지금도 선뜻 성공의 경험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퇴라는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실패했다고 정의한다. 그 실패를 인식하고, 수용하고, 인정하기까지의 그 괴로웠던 과정 덕분에 더욱 솔직해질 수 있었다.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 혹은 맞지 않는지, 어떤 상태를 견디기 어려워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안다. 이런 성향과 삶에 대한 태도는 새로운 선택 앞에서 여전히 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지만 동시에 더 신중하고 진지하게 도전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좋은 기회로 실무 경험을 비교적 일찍부터 쌓을 수 있었다. 학기 중에는 학교 스튜디오와 병행하기도 하며, 방학 기간에는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실무를 통해 건축이 작동하는 방식을 엿보며 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학교 스튜디오에서의 건축과 실무 건축 사이의 괴리감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질문을 확장해 나가는 스튜디오의 건축과 달리, 제한된 조건 속에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나에게 끝내 정리되지 않는 불편함으로 남아 여러 몸부림으로 그 거리를 좁혀보고자 했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돌이켜보면 그간의 시도들 역시 무언가 기여하고 싶다는 의지보다는 스스로 느끼는 질문과 불편함을 해소하고 싶다는 다소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건축, 현장에서 마주하는 건축, 매체를 통해 접하는 건축 사이에서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차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 가운데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지 아직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 무언가로부터 동떨어진 느낌은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더 솔직히는, 해소의 의지는 없는 것에 가깝고. 그저 정리해보고 싶다는 마음인 듯하다.
이제와 돌아보니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로 나는 계속 바깥을 돌아다녔나보다. 틈이 나는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전시를 보거나, 이름이 알려진 건축물을 직접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는 대전에 머무르며 느끼는 지리적 한계와 정보의 밀도를 몸으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고, 동시에 그 아쉬움을 스스로 달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주한 공간들 앞에서 나는 질문들을 또다시 반복한다. 예컨대 이런 것들 말이다. 나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지, 배워온 건축과 실재하는 건축, 또는 매체로 소비되는 건축의 차이는 무엇인지, 무의식적으로 건축을 평가하는 나의 기준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지 ...
앞서 말했듯 아직 나는 판단을 내리기보다 질문을 붙잡고 있는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빠른 결론보다는 불편함을 유지한 채 오래 바라보는 방식을 택해왔고, 모든 것은 그 연장선에 있다. 건축을 잘 설명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무엇을 모르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 그 상태의 사람으로 건축을 계속해나가고 싶다. 개인적인 질문에서 출발하더라도 그 질문이 생성된 맥락과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사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의 나에게 모든 기회는 도전이며, 동시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바깥으로, 세상의 방향으로 꺼내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26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