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노동당사와 모노노케 히메

철원노동당사와 모노노케히메_02 철원노동당사와 모노노케히메_03

1.
전쟁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지속되는 상태로 본다면, 철원은 그 상태가 여전히 진행 중인 대표적인 땅이다. 해방과 함께 삼팔선 이북으로 편입되며 북한 영토가 되었던 이 지역은 한국 전쟁을 거치며 남한으로 수복되었다. 전쟁 전 인구 7만이 모여 살던 철원읍은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벌판과 무너진 건물의 흔적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민간인통제선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2.
이 철원 안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예외적인 건물이 하나 있다. 아니, 폐허가 있다. 1946년 당시 북한 치하에 있던 철원에서 지역 주민의 강제 노동과 성금으로 지어진 노동당사이다. 한국전쟁 당시 철원 시가지의 다른 관공서도 함께 인접해 있던 철원의 구시가지이지만 지금은 모두 파괴되어 터만 남아있다. 그런데 이 건물. 노동당사만은 외벽 골조와 실내 일부를 유지하고 있다. 2층 바닥은 무너져 내렸고 3층은 옥상과 바닥 일부를 잃었지만 건물의 외곽 형태는 살아남아 2002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표면에는 총탄과 포탄 자국이, 진입 계단에는 전차 궤도 자국이 남아있고, 후면 방공호에서는 다수의 유골, 실탄, 머리카락, 그리고 철사줄이 발견되었다. 국내에서 이 정도 파괴 수준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건물은 이 곳이 유일하다.

3.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고싶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1997년 작, <모노노케 히메>에서는 명확한 악역이 없다. 에보시는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숲을 파괴하면서도 병자와 버려진 이들을 거두는 인물이다. 산(월령공주)는 인간을 증오하지만 그 증오에는 개인적이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 대립의 한 가운데에는 시시가미가 있다. 생명을 거두기도, 주기도 하는 존재이지만 인간이 벌이는 선악 다툼과는 무관하다. 영화의 후반부는 자연과 인간의 갈등이 고조되지만 결말은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아시타카와 산은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세계를 계속 공유하기로 할 뿐이다.

4.
다시 노동당사로 돌아가 보면, 이 건물의 고유함은 물리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어진 이후 지금까지 서로 다른 주체가 반복적으로 이 건물에 다른 의미를 덧씌워왔다. 1946년 이 건물은 지역 주민을 통제하고 사상운동을 억압하는 지역거점으로 지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이 일대는 특히 교전이 치열했던 지역이었고, 그 과정에서 생긴 총탄과 포탄 자국은 이후 이 건물을 규정하는 물리적 증거가 되었다. 전쟁 중에는 미군이 폐허가 된 건물을 한동안 교회당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휴전 이후에는 반공 교육과 안보관광의 도구가 되어 초기와 정확히 반대되는 용도로 쓰였다. 1994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곳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으며, 2022년에는 노동당사 바로 앞에 철원역사문화공원이 들어섰는데, 정작 이 건물이 증언하는 냉전기 대신 그보다 다루기 쉬운 1930년대 식민지 근대의 풍경을 재현했다. 정부는 '원형보존'이라는 이름으로 이 건물을 보수 공사하고 있는데, 어느 시점의 원형을 기준으로 삼을지는 명확히 정의되지 않고 있다. 이 입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저마다 이 건물의 ‘진짜 의미’를 자신의 방식대로 확정하려 한다는 것. 통제와 수탈의 거점으로, 승리의 증거로, 반항의 무대로, 평화의 상징으로, 지역 경제의 소재로, 복원해야 할 원형으로 …
그러나 이 모든 인간의 개입과 완전히 무관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 이있다. 총탄 흔적 속에서 식물이 자라고 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들은 어느 서사의 편도 들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만든 여러 겹의 서사가 쌓인 표면 위에서, 그것들과 무관하게 지금도 계속 자라고 있다.

4-1.
철원 노동당사는 지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의미로 고정된 적이 없고, 새로운 서사가 덧붙는 과정이 진행중이다. 강제노동으로 지어진 과정은 전쟁 이전에 이미 작동하던 통제와 억압을 보여주고, 전쟁 중 남은 총탄과 포탄 자국은 파괴 그 자체를 증거로 남긴다. 휴전 이후의 반공 교육과 안보관광은 경계와 감시라는 냉전적 조건을, 2022년의 역사문화공원은 기억을 편집하는 재건의 방식을, 2024년의 원형보존 공사는 복원이라는 행위가 안고 있는 모호함을 각각 드러낸다. 하나의 부지 안에 이렇게 많은 해석의 지점이 겹쳐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5.
노동당사를 둘러싼 여러 서사 중 어느 것도 완전한 악, 완전한 진실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건물이 처한 상황은 영화 <모노노케 히메>가 그리는 세계와 닮아 있다. 노동당을 수탈의 가해자로만 보는 시선도, 이 건물을 그저 극복해야 할 과거로 보는 시선도, 각각 절반의 진실만 쥐고 있다. 그리고 총탄 자국 속에서 자라는 식물은 시시가미의 자리에 있다. 인간들이 다투며 만들어낸 의미의 지형 위에서, 그 다툼과는 무관하게 작동하는 힘이다. 그렇다면 이 곳이 향해야 할 결말도 영화의 결말과 같은 방향에 있다. 아시타카와 산이 화해하지도 하나로 합쳐지지도 않은 채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가기로 하듯 노동당사를 둘러싼 여러 서사 역시 하나의 결론으로 봉합될 필요가 없다.

6.
이 건물을 둘러싼 모든 인간의 서사는 결국 누군가의 편에 서는 일이었다.

철원노동당사와 모노노케히메_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