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닿기를 바라며
5년 전, 2021년 11월 언젠가의 글
‘내가 건축을 하고싶은 이유. 누군가 왜 건축이 하고싶느냐 물으면사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굳이 이유를 찾지 않는다. 한 때 의사라는 직업을 내 마음 속에 올려 두었을 때는 계속해서 그 당위를 찾곤 했다. 내 마음 속 그 자리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힘이 외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이유가 꼭 필요한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나는 불안하지 않다. 세상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특히 사람의 마음과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낀다. 내 마음 속 한 자리를 차지하는 건축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그 자리를 지킨다. 아니, 되려 나를 지켜준다. 그리고 그것이 차이이다.‘
이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눈이 멈추는 자리는 늘 같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낀다는 문장. 그 마음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그 설명하지 못하는 마음을 안은 채로, 나는 어느새 매일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번역이라는 일을 생각해본다. 시 한 편을 다른 언어로 옮기다 보면 원문이 품고 있던 무언가는 그 과정에서 반드시 얼마간 사라지고, 사라진 자리에는 원문에는 없던 다른 무언가가 새로 생겨난다. 번역이 원문의 복사가 아니라 원문을 딛고 새로 쓰는 일이라면, 건축도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머릿속에서 형태 없이 떠돌던 생각을, 반드시 형태를 가져야만 하는 언어로 옮겨 적는 일. 다만 그 언어에는 지켜야 할 문법이 있고 그 문법은 건축에서의 기능에 빗댈 수 있다. 시인이라면 문법을 부수면서 자유롭게 쓸 수 있겠지만 번역가는 정해진 문법 안에서 원문이 하려던 말을 어떻게든 살려내야 하고, 건축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아름다운 생각이라 해도 지붕은 물이 새면 안 되고 계단은 오를 수 있어야 하며 벽은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부술 수 없는 문법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 문법 안에서 본래의 생각과 최대한 가까운 지점을 찾아내려 애쓰지만 다 옮기고 난 뒤에도 마음 한구석은 계속 그 자리에 남아서, 이 번역이 정말 원문이 하려던 말을 하고 있는 게 맞는지를 좀처럼 놓지 못한다.
번역된 글은 번역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더 이상 번역가의 것이 아니게 된다. 같은 문장이라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곁에 있던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이 그때까지 살아온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가닿고, 아무리 정확하게 옮겼다 해도 그 정확함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원문과는 전혀 무관한 것을 그 안에서 발견해내기도 한다. 그건 이제 번역가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건축이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준다며 먼저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말하고 나면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어떤 변수 때문에 정작 누군가에게는 그 말이 배반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보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이다.
그렇다면 왜 계속 옮기려고 하는가. 5년 전의 나는 이유를 굳이 찾지 않기로 했고, 그 마음이 정확히 무엇인지 여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제는 설명하지 못하는 채로 매번 다른 원문 앞에 다시 앉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만은 안다. 게다가 번역해야 할 원문은 매번 다르다. 프로젝트마다 지향해야 할 방향과 풀어야 할 문제가 다르고, 지난 학기에 유효했던 방식이 이번 학기에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니. 매번 새로 헤매야 한다는 게 아직은 이 일을 계속하고 싶게 만든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다짐하며 책상 앞에 앉는 번역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거창한 자리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저 매번 다른 원문을 옮겨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헤매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는 마음.
내 마음 속 그 자리는 아직 그대로. 나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모른 채 다음 원문 앞에 앉아 있다.